최근 우리 나라 가요계를 각종 표절 논쟁이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8월 31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표절 특집"을 방송하면서 다시 한번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이 날 방송에서 진행자인 배철수씨와 게스트인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최근 표절 논쟁의 중심에 있는 G-드래곤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물론 배철수씨와 김태훈씨는 MB시대에서 가장 필수적 화법인 "주어 생략"을 통해 ("구체적인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플로라이다의 라잇라운드 듣겠습니다.") 교묘히 빠져 나갔으나 음악캠프 게시판은 이미 한차례 광풍이 지나간 뒤다.
한편 그 선곡으로 인해 묻히긴 했지만 특집 자체도 재미있었다.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초기 시절 표절 논쟁이나 헨델의 표절, 최근의 Viva La Vida 사태까지 음악사의 굵직굵직한 표절 논쟁들을 소개하였는데, 그 중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영국의 얼터너티브 락 밴드 The Verve의 대표곡, <Bittersweet Symphony>(이하 <B/S>)의 표절에 관한 언급이다.
버브는 1997년 그들의 세번째 정규앨범인 <Urban Hymns>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그들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영국에서만 200만장(7xPlatinum), 미국에서 100만장(Platinum)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그해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중 하나가 되었다. 또 비평적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는데, 주류 음악에 대해 비우호적이기로 유명한 피치포크 미디어에서조차 이 앨범에 8.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물론 버브가 주류 성향이 아니었다는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결국<Urban Hymns>는 그해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에 선정되었다. 한편, 영국의 음악지 Q Magazine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Urban Hymns>는 역대 가장 위대한 앨범 18위에 선정되었고, 같은 곳에서 2008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가장 위대한 영국 앨범" 10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다른 선배 뮤지션에게도 인정 받았는데, 독설가로 유명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마저 버브를 "the next biggest band in the world"라고 칭찬하며, 자신들의 공연에서 <B/S>를 커버한 적도 있다.
자 이제 여기서 표절의혹이 등장한다. 그런데 <B/S>의 표절 논쟁은 단순한 표절로 볼 문제가 아니다. 일단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는 Rolling Stones(이하 RS)의 <The Last Time>과 비교 동영상을 보시겠다.
Andrew Oldham Orchestra <The Last Time> (1966)
(Parlophone의 공식 Promo Video라서 외부 embed가 제한되어 있다)
들어보면 이건 표절 정도가 아니라 거의 가져다 쓴 수준이다. 특히 스트링 부분은 베낀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가져다 쓴 듯한 혐의가 보인다. 물론 기본 스트링 진행 이외에 바이올린의 진행이나 기타 노이즈 사운드, 그리고 중요한 보컬과 가사는 온전히 버브의 몫인것 같지만, 기본적인 곡의 뼈대는 분명 <The Last Time>과 비슷하게 들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선 혼동을이기 위해 언급하자면 이들이 도용한 혐의를 받는 곡은 RS가 1965년에 발표한 <Out of Our Heads>에 수록된 <The Last Time>이 아니고, RS의 프로듀서 겸 매니저였던 Andrew Oldham이 1966년에 내놓은 <Rolling Stones Songbook>에 수록된 오케스트라 편곡 버젼이다.
버브는 <B/S>에 <The Last Time>을 가져다 쓴 것이 맞다. 본인들도 인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사전에 저작권자측과 샘플링 사용에 관한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후에 버브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은 Oldham 버젼 The Last Time의 샘플을 사용하는 대가로 <B/S>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50%를 로얄티로 지불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버브는 2번째 스튜디오 앨범이 영국에서 겨우 Gold(10만장)를 달성했을뿐 주류 음악계와 음악 시장에서 크게 인정받지는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RS와의 합의는 50%의 로얄티라 해도 RS로서는 크게 이익을 기대하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버브는 이미 앨범 발매 이전까지 모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였고, <B/S>는 완전히 합법적인 샘플 사용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들의 야심작 <Urban Hymns>를 발표한 버브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에 감격했을 것이고,또 <B/S>로 벌어들인 수입의 50%를 챙기게 된 RS 할배들도 후배들의 성공을 축하해주었을 것이다. <B/S>는 영국 음악계의 전설과 새로운 신예가 함께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들어낸 브릿팝의 영원한 송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 꿈이었구나. 이런 훈훈한 스토리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표절 이야기도 나올 필요가 없고, 내가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꿈이 어긋난 것은 앨런 클라인(Allen Klein)이란 인물의 등장과 함께였다. 이 앨런 클라인이라는 인물은 매우 능력있는 음악 사업가이면서, 한편으로는 비틀즈와 RS 곡들의 판권에 관련된 수많은 소송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클라인은 RS의 매니저를 2년간 하였고, 후에 소송을 통해 RS의 71년 이전 곡들에 대한 저작권을 취득하였다.(키스 리차드는 이에 대해 "값비싼 수업료"였다고 했다) 물론 버브가 앨범 발매 이전에 샘플링에 관한 협상을 진행할 때도 그 대상은 RS가 아닌, 클라인이었다. 클라인은 <B/S>가 예상외의 성공을 보이자 후회하기 시작한다.(빌보드 23위까지 랭크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클라인은 97년 말, 버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유는 "버브가 애초의 합의사항을 위반하고, 너무 많은 분량의 샘플을 그들의 곡에 사용하였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송에서 패한 버브는 <B/S>의 수입의 50%가 아닌 100% 전부를 클라인에게 지급하여야 했고, 곡의 credit도 버브(혹은 리차드 애쉬크로프트) 작곡이 아닌 키스 리차드/믹 재거 작곡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B/S>가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때, 후보로 오른 이름은 버브가 아니라 Jagger/Richards였던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클라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버브의 프론트맨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는 평소에도 자신들의 곡이 상업광고에 사용되는 것을 매우 혐오하였는데, 클라인은 <B/S>를 나이키 신발 광고와 Vauxhall 자동차 광고에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결국 버브는 또다른 소송을 통해 유럽 지역에서 <B/S>를 상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애쉬크로프트는 훗날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만약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B/S>는 치즈버거 광고에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이 곡은 결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소송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작곡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면서 수입을 올렸을 RS 본인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키스 리차드는 1999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버브의 로얄티를 전부 가져간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만약 버브가 더 좋은 곡을 쓸 수 있었다면, 그들은 돈을 지킬 수 있었다"고 답하였다.
2009년, 이 사태에 관련된 인물들의 근황은 어떨까. 우선 모든 일의 원흉인 앨런 클라인은 올해 7월 4일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토록 악명이 높았던 그였지만 말년에는 알츠하이머 병으로 고생하다가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에 관해 RS나 버브, 비틀즈의 멤버들이 뭐라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두운 과거였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용서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한편, 10년만에 재결합하여 2008년에 4번째 정규앨범 <Forth>를 발매했던 버브는 다시 고질적인 애쉬크로프트와 다른 멤버들간의 불화로 인해 2008년 말부터 활동을 중단하였다. 2009년 8월, 영국의 가디언 지는 버브가 결국 세번째로 해체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기사에서 기타리스트 닉 맥케이브와 베이시스트 사이먼 존스는 "애쉬크로프트가 재결합을 자신의 솔로 커리어에 이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실제로 애쉬크로프트는 재결합 이후에도 솔로 앨범 준비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 인터뷰에서 "솔로 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 결국 주 갈등요인은 애쉬크로프트의 솔로 활동에 대한 견해차인듯 한데, 어쨌든 분명한 것은 당분간 버브의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목처럼 Bitter 하면서 Sweet한 이 곡에 얽힌 내막은 여기까지이다. 다시금 버브의 무대를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리고 결국 이 글의 발단이 된 표절 논쟁이 사필귀정이 되기를 바라며, 개인적으로 최고의 라이브 영상이라고 생각하는 글래스톤베리 2008에서의 <Bittersweet Symphony> 동영상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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